단군 건국 이야기·8조법·위만 조선·한 군현으로 고조선의 흐름을 잡고, 부여·고구려·옥저·동예·삼한의 정치 체제와 풍속을 사료 단서로 구별합니다.
🎯 학습 목표 — 첫 국가와 여러 나라를 구별하기
이 강을 마치면 고조선이 세워져 멸망하기까지의 흐름을 순서대로 말할 수 있고, 부여·고구려·옥저·동예·삼한을 풍속 단어 하나로 가려낼 수 있습니다. 이 단원은 거의 매회 사료 제시형으로 출제되는데, 사료가 대부분 중국 역사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 같은 기록에서 나오기 때문에 표현이 비슷비슷합니다. 그래서 결정적 단어를 정확히 짚는 연습이 핵심입니다.
앞 강에서 청동기 시대에 계급과 군장이 나타났다고 정리했습니다. 군장 사회 가운데 여러 집단을 아우르며 가장 먼저 국가로 성장한 것이 고조선입니다. 이후 철기 문화가 퍼지면서 만주와 한반도 곳곳에서 부여·고구려·옥저·동예·삼한 같은 정치 세력이 성장했습니다. 이 가운데 부여와 고구려는 왕이 있는 연맹 왕국으로 발전했고, 옥저와 동예는 군장이 다스리는 단계에 머물렀다가 고구려에 흡수되었습니다.
🏛️ 고조선 — 건국에서 멸망까지
고조선의 건국 이야기는 고려 후기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전합니다. 하늘의 신 환인의 아들 환웅이 풍백·우사·운사를 거느리고 내려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을 내세웠고, 곰이 변한 여인과 혼인해 단군왕검을 낳았다는 내용입니다. 시험에서는 이야기 자체보다 그 속에 담긴 사회상을 묻습니다. 풍백·우사·운사는 농경을 중시했음을, 곰과 호랑이는 특정 동물을 숭배한 부족의 존재를, 단군왕검이라는 칭호는 제사장(단군)과 정치 지배자(왕검)가 한 사람이었던 제정일치 사회를 보여 준다고 해석합니다. 기원전 2333년이라는 건국 연대는 『동국통감』 등 후대 기록이 계산한 전승 연대입니다.
고조선의 세력 범위는 비파형 동검, 탁자식 고인돌, 미송리식 토기가 분포하는 지역을 근거로 추정합니다. 이 세 유물은 '고조선의 문화 범위'를 묻는 문제의 단골 단서입니다. 기원전 4세기 무렵에는 중국 연나라와 맞설 만큼 성장했지만, 연나라 장수 진개의 공격으로 서쪽 영토를 크게 잃었다고 전합니다. 기원전 3세기 무렵에는 부왕과 그 아들 준왕으로 왕위가 이어졌고, 왕 아래 상·대부·장군 같은 관직을 두었습니다.
중국이 진에서 한으로 바뀌는 혼란기에 연나라 지역에서 위만이 무리를 이끌고 넘어왔습니다. 준왕은 그에게 서쪽 변경을 지키게 했으나, 위만은 세력을 키운 뒤 기원전 194년 무렵 준왕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쫓겨난 준왕은 남쪽 한(韓)의 땅으로 갔다고 합니다. 위만이 망명할 때 상투를 틀고 있었다는 『사기』의 기록 등을 근거로 그가 고조선 계통 사람이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학계의 해석은 하나로 정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위만 조선 시기에는 철기 문화가 본격적으로 퍼지고 주변 세력을 정복해 영토를 넓혔습니다. 또 남쪽의 진(辰)과 한나라 사이에서 중계 무역으로 이익을 얻었는데, 이것이 한과 갈등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위만의 손자 우거왕 때 한 무제가 침공했고, 고조선은 1년 가까이 버텼지만 지배층 내분 끝에 기원전 108년 수도 왕검성이 함락되었습니다. 한은 그 지역에 낙랑·진번·임둔·현도의 4군을 설치했습니다.
고조선의 법으로는 8조법(범금 8조)이 있었으며, 그중 세 조항이 『한서』 지리지에 전합니다. 사람을 죽이면 곧바로 사형에 처하고, 남을 다치게 하면 곡식으로 갚으며, 도둑질하면 노비로 삼되 용서받으려면 50만 전을 내야 했습니다. 다만 고조선에서 화폐가 쓰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 속죄 조항은 한 군현 시기에 덧붙거나 바뀐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시험은 이 조항에서 생명 존중, 사유 재산 보호, 노비가 있는 신분제 사회를 읽어 내게 합니다.
🗺️ 여러 나라의 성장 — 정치 체제와 풍속 비교표
부여는 만주 쑹화강 유역의 넓은 평야에서 농경과 목축을 함께 한 나라로, 494년 고구려에 완전히 병합되었습니다. 왕 아래 마가·우가·저가·구가라는 가(加)들이 각자 사출도를 다스려, 중앙과 4개 지방이 합쳐진 연맹 왕국 구조였습니다. 흉년이 들면 왕에게 책임을 묻기도 했다는 기록은 왕권이 아직 약했음을 보여 줍니다.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고, 도둑질하면 12배로 갚게 하는 1책 12법, 왕이 죽으면 사람을 함께 묻는 순장,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는 형사취수 풍습이 있었습니다.
고구려는 압록강 중류 졸본 지역에서 일어났습니다. 산이 많아 농토가 부족했기에 일찍부터 주변 지역을 정복하며 성장했습니다. 5부족 연맹을 바탕으로, 왕 아래 대가들이 사자·조의·선인 같은 관리를 따로 거느렸고, 중요한 일은 제가 회의에서 정했습니다. 10월에 동맹이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고, 혼인 뒤 남자가 신부 집 뒤에 지은 작은 집(서옥)에서 지내다 자식이 크면 아내와 함께 돌아가는 서옥제가 있었습니다. 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작은 창고가 있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옥저와 동예는 함경도와 강원도 동해안에 자리했고, 왕 없이 읍군·삼로라는 군장이 각 읍락을 다스렸습니다. 고구려의 압력으로 큰 나라로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옥저에는 어린 여자아이를 신랑 집에서 키운 뒤 성인이 되면 혼인시키는 민며느리제와, 시신을 임시로 묻었다가 뼈만 추려 가족 공동의 큰 목곽에 넣는 장례 풍속이 있었습니다. 동예는 10월에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고, 다른 읍락의 경계를 침범하면 노비나 소·말로 갚게 하는 책화, 같은 씨족끼리 혼인하지 않는 족외혼이 있었습니다. 특산물로 단궁(활)·과하마(키 작은 말)·반어피(바다표범 가죽)가 유명했습니다.
삼한은 한반도 남부의 마한·진한·변한을 말합니다. 여러 소국으로 이루어졌으며, 소국의 지배자는 규모에 따라 신지·험측·번예·살해·읍차 등으로 불렸는데, 시험에는 큰 세력의 신지와 작은 세력의 읍차가 주로 나옵니다. 마한의 목지국 지배자가 삼한 전체를 대표했다고 전합니다. 정치 지배자와 별도로 제사장 천군이 있었고, 천군이 다스리는 신성 구역 소도에는 죄인이 도망쳐 와도 잡아가지 못했습니다. 이는 제사와 정치가 분리된 제정 분리 사회였음을 보여 줍니다. 씨를 뿌린 뒤인 5월과 추수를 마친 10월에 계절제를 지냈고, 변한은 철이 많이 나서 낙랑과 왜에 수출하고 철을 화폐처럼 썼습니다.
| 나라 | 정치 | 제천 행사 | 대표 풍속·경제 단서 |
|---|---|---|---|
| 부여 | 왕 + 4가(마가·우가·저가·구가), 사출도 | 영고(12월) | 1책 12법, 순장, 형사취수, 반농반목 |
| 고구려 | 왕 + 대가, 제가 회의, 5부 | 동맹(10월) | 서옥제, 부경, 정복 활동 |
| 옥저 | 읍군·삼로(군장) | — | 민며느리제, 가족 공동 무덤, 해산물 |
| 동예 | 읍군·삼로(군장) | 무천(10월) | 책화, 족외혼, 단궁·과하마·반어피 |
| 삼한 | 신지·읍차 등, 목지국 | 5월·10월 계절제 | 천군·소도(제정 분리), 변한의 철 수출 |
🧩 시험에서는 이렇게 나온다 — 헷갈리는 개념 구별
여러 나라 문제는 사료 한 단락에 나라 이름을 (가)로 가린 채 나옵니다. 행사 이름이나 풍속 단어가 바로 결정적 단서이므로, 표의 단어를 나라와 짝지어 기억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헷갈림 ① 10월 제천 행사 — 고구려의 동맹과 동예의 무천은 둘 다 10월입니다. 달만 보고 고르면 안 되고 행사 이름이나 함께 나온 풍속(서옥제냐 책화냐)으로 판단합니다. 부여의 영고는 12월이라 따로 떨어져 있습니다.
헷갈림 ② 서옥제와 민며느리제 — 서옥제는 남자가 처가에 머무는 고구려 혼인 풍속, 민며느리제는 어린 여자아이가 시가에서 자라는 옥저 혼인 풍속입니다. 누가 누구 집으로 가는지를 기준으로 구별합니다.
헷갈림 ③ 1책 12법과 책화 — 둘 다 배상 관련 풍습이지만, 1책 12법은 도둑질을 12배로 갚는 부여(고구려에도 비슷한 기록이 있음)의 법이고, 책화는 다른 읍락의 경계를 침범한 데 대한 동예의 배상입니다.
헷갈림 ④ 단군왕검과 천군 — 고조선의 단군왕검은 제사장과 지배자를 겸한 제정일치를 보여 주고, 삼한의 천군은 정치 지배자와 별도의 제사장이라 제정 분리를 보여 줍니다. 정반대 개념이므로 선지에서 자주 맞바꿔 냅니다.
헷갈림 ⑤ 고조선 멸망 원인 — 위만 조선의 중계 무역 독점과 한과의 갈등이 배경이며, 멸망 직전 지배층의 내분이 있었습니다. 철기 문화 수용은 위만 조선 성장의 바탕이지 멸망 원인이 아닙니다.
✅ 확인 문제
문제 1. 다음 사료의 (가)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가)에서는 읍락의 경계를 중요하게 여겨, 서로 침범하면 노비와 소·말로 갚게 한다. 해마다 10월에 하늘에 제사 지내고 밤낮으로 술 마시며 노래하고 춤춘다.'
① 사출도를 두었다 ② 단궁·과하마·반어피가 특산물이었다 ③ 천군이 소도를 다스렸다 ④ 서옥제가 있었다 ⑤ 민며느리제가 있었다
정답 ② — 경계 침범 배상(책화)과 10월 제천(무천)은 동예입니다. ① 부여, ③ 삼한, ④ 고구려, ⑤ 옥저입니다.
문제 2. 고조선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① 8조법을 두어 사회 질서를 유지했다 ② 왕 아래 상·대부·장군 등의 관직을 두었다 ③ 위만 집권 이후 철기 문화가 본격적으로 퍼졌다 ④ 천군이 다스리는 소도가 있었다 ⑤ 기원전 108년 왕검성이 함락되었다
정답 ④ — 천군과 소도는 삼한의 제정 분리를 보여 주는 단서입니다.
문제 3. 8조법으로 알 수 있는 고조선 사회의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신분 차이가 없는 평등 사회였다 ② 사유 재산을 보호하고 노비가 있었다 ③ 제사장과 지배자가 분리되어 있었다 ④ 화폐 대신 철을 사용했다 ⑤ 여러 가(加)가 사출도를 다스렸다
정답 ② — 도둑질한 자를 노비로 삼는 조항에서 사유 재산과 노비의 존재를 읽어 냅니다.
문제 4. 다음 중 나라와 풍속의 연결이 옳은 것은?
① 부여 — 무천 ② 고구려 — 영고 ③ 옥저 — 가족 공동 무덤 ④ 동예 — 1책 12법 ⑤ 삼한 — 사출도
정답 ③ — 옥저는 뼈를 추려 가족 공동의 목곽에 안치했습니다. 무천은 동예, 영고는 부여, 사출도는 부여입니다.
📝 핵심 요약과 다음 강 예고
- 고조선: 단군 건국 이야기(제정일치) → 부왕·준왕 왕위 세습 → 위만 집권(기원전 194년경) → 우거왕 때 왕검성 함락(기원전 108년) → 한 4군
- 8조법: 생명 존중·사유 재산·노비 — 문화 범위 단서는 비파형 동검·탁자식 고인돌·미송리식 토기
- 부여(영고·사출도·1책 12법), 고구려(동맹·제가 회의·서옥제), 옥저(민며느리제·가족 공동 무덤), 동예(무천·책화·족외혼), 삼한(천군·소도·변한의 철)
- 함정: 10월 제천은 고구려와 동예 둘, 제정일치(단군왕검) vs 제정 분리(천군)
여러 나라 가운데 가장 먼저 중앙 집권 국가로 성장한 나라는 고구려였습니다. 다음 4강에서는 태조왕부터 장수왕까지 고구려 주요 왕의 업적을 순서대로 정리하고, 수·당과의 전쟁과 멸망, 광개토 대왕릉비까지 살펴봅니다.
📚 참고 자료
관련 주제
- 고조선
- 8조법
- 위만 조선
- 부여
- 옥저
- 동예
- 삼한
- 영고
- 책화
- 소도
- 자격증
- 자격증 강의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2급 완성 30강
- NUGUNA
- 누구나
📚 시리즈 전체 공유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2급 완성 30강
이 강의가 속한 시리즈는 총 30강(수강생 전용 보너스 · 1~3강 무료)입니다. 처음부터 배우려는 동료에게 시리즈 전체를 알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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